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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 가질수록 우리는 행복할까?

by 스크립티드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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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한 인간을 개체로 보느냐, 아니면 사회적 산물로 보느냐에 따라서 인간에 대한 관점은 크게 달라진다. 이 책의 저자 에리히 프롬은 “개인과 사회”라는 문제에 접근하면서, 개체로서의 본연의 인간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소유”와 “존재”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그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 「소유냐 존재냐」는, 특히 프롬의 사상세계에 관한 입문서로 적절한 책이다. 저자는 전문적인 학문적 자료를 피하면서 일목요연하고 읽기 쉽도록, 그가 이전의 저술들에서 한층 엄밀하게 (때로는 장황하게) 파고들었던 사유의 과정을 이 책 안에 요약하고 있다. 나아가 새로운 시각에서 간결하면서도 압축된 형태로 자신의 고백의 다양한 단편들을 종합해놓고 있다.……아마도 미래의 학자들은 프롬을-종교전쟁 말기의 저 위대한 휴머니스트처럼-용기 있는 이념을 가지고, 우리 모두가 한층 관용을 알고 도움을 주며 욕구를 모르고 평화를 사랑하는 인간이 되도록 기여한 저 제3의 힘의 대변자의 계열에 넣어 해석할 것이다. 그리고 휴머니즘적 항거파가 뿌리내리기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
에리히 프롬
출판
까치
출판일
2020.02.03

만약 나의 소유가 곧 나의 존재라면, 나의 소유를 잃을 경우 나는 어떤 존재인가?

개인마다 추구하는 삶이 다른 것처럼, 에리히 프롬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많은 측면을 기점으로 소유적 실존양식과 존재적 실존양식의 두 차이점을 비교하였다. 소유란, 우리가 가진 물질에 대한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기억, 지식, 인간관계등 다양한 측면을 바탕으로 얘기하였다. 소유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소유를 멈추고 존재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해 왔다. 사회, 기업, 환경 등이 소비를 암묵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소비를 부추겨 왔다. 소유 습관에 길들여져 있는 나를 포함한 사회를 보며 돌이킬 수 없다고 티브이에 나오는 홈쇼핑 광고, 유튜브 채널이, 판촉행사가 얘기하는 거 같다. 

소유냐 존재냐: 소유지향의 지배적 특성

프로이트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성숙기 이전에 쇼유지향의 지배적 특성이 두드러지면 병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한다. 완전히 동의하진 않지만 일리가 있다고 본다. 소유를 해야 만족하는 현대사화의 특성이지 않을까? 애초에 소유를 조성하는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어딜 가나 광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소유를 재촉하고 있다. 카카오톡 상단 광고, 네이버 노출광고등 스마트폰을 보지 않더라도 버스광고, 지하철 광고를 통해서도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욕구를 이겨내기란 참으로 힘든 일인 거 같다. 광고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끌어들일까 항상 고민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눈길은 조금씩 가기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현대사회에서 소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거에요라고 자기 합리화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 거 같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에 소비하는 것이 현명한 소비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미 소유를 무제한으로 불러일으키는 사회가 병든 사회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에 어떻게 맞서냐는 개인의 몫이다.

소유냐 존재냐: 존재적 실존양식과 소유적 실존양식의 다양한 요소

이런 요소들을 논하기 전에, 책에서 언급한 두 가지 성향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 존재적 실존양식: 나누어가지고 베풀고 희생하려는 성향으로서 인간실존의 특유의 조건에서, 특히 타자와 하나가

됨으로써 자신이 고립을 극복하려는 타고난 욕구에서 나온 성향.

  • 소유적 실존양식: 자기 것으로 하려는 성향으로서 궁극적으로 살아남고자 하는 생물학적 소망에서 뻗어나온 힘.

학습

존재적: 휘몰림을 당하는 것이 아닌, 자유롭고 능동적인 관심 또는 무엇인가 지향하려는 노력

소유적: 그들이 들은 강의 내용을 경직된 사고의 집합체

기억

존재적: 일찍이 보았거나 들었던 것을 소생시키는 것 (충분한 집중력을 가지고 눈여겨보아 둔 과거의 경험이 전제)

소유적: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록해 놓는 것도 소외된 기억행위

지식

존재적: 나는 알고 있다. 앎은 기능적인 것으로 생산적 사고과정의 한 부분 (목적: 보다 깊이 아는 것)

소유적: 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을 획득하여 확보하고 있음 (목적: 보다 많이 아는 것)

소유냐 존재냐: 소유하는 것을 잃을때 나는 어떤 존재인가

이런 생각 해본적 있을 겁니다. 소유에 대한 욕심이 더더욱 커져는 가긴 하지만, 만약 나의 소유가 곧 나의 존재라면, 나의 소유를 잃을 경우 나는 어떤 존재인가? 소유를 잃은 나에게 어떤 수식어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서 얘기하는 소유라는 개념은 물질뿐만 아니라 지위 혹은 친구 심지어 생명까지 거론한다.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내용 중, 외과의사인 도카이씨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한 풍요롭게 살던 의사가 나치 강제수용소에 끌려가는 책을 읽고 “나는 대체 무엇인가”라는 말을 했었다. 직업을 막론하고 수용소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 친구, 지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에 비롯한 질문인 거 같다. 물론 극단적으로 생각한 면도 있다. 다만, 소유가 한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크지 않은 거 같다. 애플 창업자 스티븐 잡스 또한 입는 차림세를 보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목폴라티에 뉴발란스 신발 소소하게 살아가지만, 자신의 가치관은 명확한 거 같다. 핸드폰의 디자인만으로 봤을 때 그의 소소하고 미니멀리스트 느낌의 가치관이 담기지 않았나 생각한다.

소유냐 존재냐: 소유적 실존양식의 인간관계

소유적 실존양식의 근거한 인간관계는 경쟁심, 적대감, 두려움으로 특징지어진다. “나의 소유는 곧 나의 존재”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인간관계에 대해 갈망하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탐욕은 정신적이라는 것이다. 만약 육체적으로 채워졌다 하더라도, 정신적인 공허, 권태, 고독, 질투등 다양한 탐욕을 충족시키는 것으로는 제거될 수 없는 성질이라고 말한다. 소유적 실존양식은 어떤 식으로든 빼앗길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런 위험에서 대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소유를 추구한다고 한다. 소유한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방어적인 태도 혹은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어장도 이런 소유적 실존양식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신이 가지긴 싫지만 남에게 주긴 싫다, 남에게 받는 호감표시를 소유하고 싶어 호감을 받아들이지 않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지내는 것이다. 혹은 남녀관계에서 소유욕이 너무 강하여 시시때때로 연락을 통해 뭐하는지 누구랑 있는지를 확인하고 때론 증명을 요청하며 괴롭히기도 한다.

소유냐 존재냐: 현대인은 버리기 위해서 사들인다. 보존이 아닌 소비가 모토

그의 저서를 보면 마치 현대를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30년 전쯤의 시대에도 이러한 소비를 중시하는 시대였는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30년 전보다 과학기술, 경제적으로 더욱 발전된 지금이 소비가 더 왕성할 것이다. 그가 말한 우리의 소비 패턴은 취득 -> 일시적 소유와 사용 -> 폐기처분 (가능하면 보다 나은 모델과의 유리한 교환) -> 새로운 취득. 오늘날 폐기처분은 여러 형태로도 변할 수 있다. 중고거래가 될 수도 있고 집 어딘가에 썩혀져 있는 골동품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좋아하는지 아니면 단순 원하는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소비행위를 함으로써 발생하는 "쓰레기"이다. 표현이 다소 과격하긴 했지만, 옷장을 보게 되면 알 것이다. 1년에 한 번 입을까 말까 하는 옷이 얼마나 있는가? 심지어 폐기처분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현실이다. "언젠간 한번 입겠지"라는 생각으로 이사를 갈 때 생겨나는 힘듦과 공간차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나 또한 이런 습관이 있어 최대한 소비를 줄이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에 한하여 소비를 하는 습관을 기르고 있다.

죽음에의 입문은 사실상 삶에 대한 입문이다. 모든 형태의 소유물에 대한 욕구,
특히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수록 그만큼 죽음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도 줄어든다.
왜냐하면, 우리는 잃을 것을 그만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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